오늘은 링컨 대통령의 운명의 날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한다.
포드 극장(Ford's Theatre)에서 링컨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간
비극적인 사건이 미국 역사상 많은 의구심과 심오한 영향을 남겼습니다.
미국 연대기에서 가장 어두운 밤인 포드 극장에서의 저격사건에 대해 파헤쳐 보고
에브라함 링컨 대통령의 죽음에 얽힌 일화를 살펴 보려고 한다.
1865년 유명 배우이자 남부 지지자였던 존윌크스부스는
링컨을 인질로 잡아 남부 포로를 석방하기 위한 계획을 짰다.
그러나 4월11일 링컨의 흑인 투표권을 위한 연설 듣고서 몹시 화난 부스는
링컨을 암살하기로 계획을 수정한다.
대통령 부부가 포드극장에 간다는 사실을 안 부스는
공범자들과 함께 부통령 앤드루 존슨과 서기 윌리엄 H. 세이워드를 암살하기로 한다.
포드 극장을 둘러싼 저격사건의 배후
역사는 워싱턴 DC의 포드 극장에서 발생한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을 기억합니다.
1865년 4월 14일 저녁,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비극적인 정적이 쏜 총탄에 맞아
최후를 맞이하면서 국가 전체는 혼란을 맞이합니다.
기억에 각인된 이 중추적인 순간은 수많은 질문을 제기합니다.
그 중 가장 의구심과 공분을 산 부분은 남북 전쟁의 여파 속에서
링컨 대통령이 그렇게 위험한 시기에 경호원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극장에 갔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극장 나들이의 치명적인 결함.
그 불운한 밤에 포드 극장에 참석하기로 한 링컨 대통령의 결정은
표면적으로는 겉보기에 평범한 결정이었습니다.
공연 중인 연극 "Our American Cousin"은 즐거운 밤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적절한 보안 조치가 부족하다는 점은 이 이야기의 잊혀지지 않는
측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전후 긴장과 계속되는 남부군의 동정을 고려할 때 대통령 경호에 대한
세부 사항이 없다는 것이 이해가 될수 있을까요?
역사가들은 링컨 대통령이 보안에 대한 여유로운 태도로 유명했으며,
종종 완전한 경비원 없이 모험을 떠나곤 했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비극이 생긴 것이 단순히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을까요?
애도하는 국가 : 과학적 분석
링컨 암살로 이어진 사건에 대한 과학적 분석은
당시의 사회적 역학뿐만 아니라 느슨한 보안 조치의 잠재적인 결과도 드러냅니다.
1860년대에는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정교한 경호 장치가 부족했고,
특히 포드 극장은 요새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극장 자체의 배치도 보안 허점에 일조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통령의 위치는 무대가 잘 보이는 반면 탈출 경로가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암살자인 존 윌크스 부스(John Wilkes Booth)는 이 제한된 공간을 이용하여
신속하게 공격하고 밤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밝혀진 동기 : 암살자의 신조
남부연합의 동조자이자 배우이자 남부 운동의 열렬한 지지자인
존 윌크스 부스(John Wilkes Booth)는
링컨을 남부의 적으로 여겼습니다.
남부연합의 원칙에 대한 그의 열렬한 믿음과 링컨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으로 인해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행위 중 하나를 저질렀습니다.
현대적인 법의학 도구가 부족하여 부스의 동기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복잡하지만,
그의 일기와 편지를 통해 그의 행동을 촉발한 열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부스는 링컨을 제거함으로써 남부군의 저항이 부활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저격 사건 당시의 개요 : 대통령의 사망과 저격자의 운명
링컨 경호원이었던 존 파커는 잠시 링컨의 마부들과 한잔 하려고
극장 옆 ‘스타 살롱’(Star Saloon)으로 나갔다.
이 때문에 대통령은 발코니 관람석에서 무방비 상태로 앉아 있었다.
기회를 노리던 부스는 10시 13분에 링컨 바로 뒤에서 머리를 겨눠 치명상을 입혔다.
헨리 래스본 소령이 부스를 잠시 붙잡았지만, 부스는 그를 찌르고 탈출했다.
10일 간 추격 끝에 부스는 워싱턴 D.C. 30마일 남쪽에 있는
버지니아의 개럿 농장(Garrett's farm)에서 발견되었다.
오랜 싸움 끝에 부스는 4월 26일 사살당한다. 군의관 찰스 리얼(Charles Leale)은
링컨의 부상을 치명상으로 진단했으며,
길 건너 양복점인 피터슨 하우스(Petersen House)로 링컨을 옮겼다.
9시간 동안 혼수상태에 빠진 링컨은 4월 15일 오전 7시 22분에 사망한다.
전쟁 서기관 스탠튼(Stanton)이 경례를 하고
“이분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근처 있던 장로교 성직자 피니어스 덴스모어 걸리(Phineas Densmore Gurley)목사가
임종 기도를 올렸다.
비 내리는 동안 성조기에 싸인 링컨의 시신은 장교들이 예를 갖추어 백악관으로 옮겼으며,
도시 교회에서 조종을 울렸다.
암살 이후 부통령 앤드루 존슨이 제17대 대통령직을 승계했으며,
다음날 오전 10시에 대통령 선서를 했다.
링컨의 시신은 기차로 워싱턴에서 고향인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로
옮겨진 후에 오크리지 묘지에 안장되었다.
뜻밖에도 링컨이 암살된 날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성 금요일이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링컨에게서 워싱턴과 예수 그리스도를 함께 느낀다고 말한다.
비극의 유산
에이브러햄 링컨의 암살은 국가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습니다.
그 여파로 대통령의 보안 프로토콜은 지속적인 경계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급격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링컨의 죽음은 축하와 안도의 시기에도 위험의 유령이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일깨워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포드 극장의 그 운명적인 밤을 다시 상기 하며, 우리는 역사적 복잡성뿐만 아니라
시간을 통해 울려 퍼지는 교훈도 발견하게 됩니다.
링컨 암살의 비극은 작은 헛점이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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